창조는 생존의 고민, 전북만의 특별함 먼저 찾아라.
"이번 지방선거는 우리에게 정치가 우리 인생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가장 좋은 정치는 어느덧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모두가 같은 생각, 같은 가치를 갖게 되는 것 아니겠어요. 그러려면 이 세상에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는 걸 인정해야 하는 거죠."
지난 4일 낮 국회 의원회관에서 만난 김진애 국회의원(57)은 이틀 전 '6·2 전국동시지방선거'의 흥분이 채 가라앉지 않은 듯 보였다.
"저의 정치적인 코드는 공간정치입니다. 우리가 산업이나 복지를 이야기하지만, 공간도 아주 큰 핵심 과제 중 하나입니다. 공간정치가, 특히 나쁜 공간정치가 너무나 횡행하니까…. 가령, 혁신도시만해도 좋은 공간정치인데, 방법에 있어 미흡함과 아쉬움이 있지요. 반면, 4대강 대운하 사업은 나쁜 공간정치의 전형이라고 봅니다. 실제로 지방선거의 가장 큰 이슈가 4대강이었잖아요."
김의원은 호탕하게 웃으며, "좋은 공간정치의 개념이 우리 사회에 많이 퍼뜨려지는 것, 그것이 나의 정치적 활동 동기 중 하나"라고 말했다.
그의 별명 '김진에너지'처럼, 인터뷰는 거침없이 진행됐다.
▲ 전공때문에라도 지역을 많이 돌아보셨을 것 같습니다. 인사동을 탄생시킨 장본인이시기도 한데, 전주 한옥마을은 어떻게 보셨는지 궁금하군요.
"여행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직업이 도시건축 쪽이다 보니 남들보다 많이 다니는 편이었죠. 전주 한옥마을은 아주 성공적인 사례입니다. 특색을 살린다는 측면에서는 오히려 인사동보다도 성공적이죠.
사실 한옥 보존이란 게 의욕만 앞세워서는 안될 일입니다. 어떤 지원 없이 보존만 하라고 한다면 어렵지 않습니까. 그런데 전주는 김완주 도지사가 시장으로 재임하던 당시 교동과 풍남동의 한옥을 중심으로 지원하고, 한옥지구 안의 양옥들을 아예 시에서 매입해 한옥생활체험관이나 술박물관 등 문화공간으로 바꾸었죠. 우리가 개발과 보존을 이야기할 때 항상 가치만 추구할 수도 없고 현실적인 것도 외면할 수가 없는데, 그런 점에서 전주를 높이 평가합니다. 대상을 작게 하는 대신 충분하게 지원하는, 작전을 아주 잘 짠 거죠."
▲ 그 후 한옥마을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최근에도 와보셨는지요.
"지난해 여름에 고등학교 강연차 전주에 내려갔다가 한옥마을에 들렀습니다. 그런데, 가꾸는 데는 너무 가꿔놓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렇다보니 예전의 자연스러운 모습을 많이 잃은 것 같았어요. 그래도 공공에서 시도를 하면 민간의 반응이 중요하죠. 당장 민간이 주도하는 문화공간이나 박물관이 생겨나고 카페나 음식점 등 문화적 분위기를 살린 공간들이 생겨나는 건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시간에 따라 익어가는 것이 좋은 도시, 좋은 공간의 조건인데…. 전주는 그렇게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습니다."
지금 갖고 있는 것부터 시작하는 것이 창조
▲ 한옥마을에 관광객이 늘고, 전통공예 등 관련 산업들도 시작되면서 한옥마을을 중심으로 구역을 넓히는 정책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 방향성이 중요한 때죠.
"두가지를 들 수 있겠군요. 첫째는 지속가능해야 한다는 것. 둘째는 하드웨어 보다 소프트웨어가 중요하다는 겁니다. 자칫 자치단체장은 실적 위주로 하드웨어에 치중할 수밖에 없는 현실인데다, 아직은 우리 사회가 소프트웨어에 대한 투자나 관심이 약하지 않습니까. 가장 경계해야 할 대목입니다."
▲ 창조도시가 주목받고 있습니다. 전주도 음식으로 세계 창의도시가 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창조'는 지역, 특히 오래된 도시를 살리는 중요한 통로가 될 수 있지만, 무엇보다 옛 것에 대한 가치를 새롭게 보려는 노력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우리 사회에서는 갑자기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는 것이 창조라는 식으로 생각을 하는데, 원래 창조도시라는 건 개념이 전혀 다릅니다. '당신이 가지고 있는 것에서 시작하라'. 바로 이거죠. 당신이 가지고 있는 한계나 제약을 인식하고, 그렇지만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라. 이것이 창조도시의 근본적인 개념입니다.
모든 도시가 다 뉴욕처럼 될 수 있는 게 아니거든요. 모든 도시는 다 다릅니다. 갖고 있는 잠재력도 다르고, 한계도, 인적, 자연, 역사, 문화적인 콘텐츠, 사람들 심성까지도 다릅니다. 각자에 맞는 창조적 아이템을 찾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
▲ 전북을 창조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방식이 있을텐데요.
"전북이 갖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또, 갖고 있지 못한 것은 무엇인지를 먼저 알아야 겠지요. 요즈음은 '벤치마킹'이 유행입니다. 벤치마킹이 중요하긴 한데 '어디처럼 되겠다', 이것은 문제입니다.
전북은 개발에 대한 소외감을 갖고 있는데, 그것을 극복해야 합니다. 저는 부산도 '제2의 도시라는 컴플렉스에서 벗어나라'고 조언합니다. 서울과 인천과는 다른 분명한 성격을 살려야 한다는 것이죠.
전북과 전주도 어떤 캐릭터를 가져야 하는지를 먼저 알아야 합니다. 가령, 다른 지역에 비해 당장 할 수 있는 일자리가 부족해도 지속가능한 자리가 많다면 괜찮은 겁니다. 숫자로 키우기 보다는 특색을 키우는 쪽으로 가야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식품산업의 가치 주목, 새만금 중심산업 되어야
▲ 새만금 쪽으로 이야기를 돌리겠습니다. 지난번 새만금 국제공모에 심사위원으로 참여하셨는데 새만금을 창조적으로 개발할 수 있는 방안을 듣고 싶군요.
"새만금은 앞으로도 30년, 50년 가야할 계획입니다. 개발계획을 만들었다고 해서 끝이 아니죠. 계획 자체가 지속가능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무엇보다 분명한 특색을 가져야겠죠. 저는 식품 클러스트 산업이 새만금의 근본적 산업의 중심이 될 수 있다는데 공감합니다. 먹거리 산업은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투자가 일어날 수밖에 없는 부분이기 때문입니다. 또하나는 국내 연안항과의 연결, 중국과의 교역에서 앵커가 될 수 있다는 겁니다. 한국은 연안 연계가 잘 되지 않습니다. 제각각 다 국제무역항을 하겠다며 서로 경쟁만 하는 식인데, 각각 경쟁하기에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자원이 너무 한정적입니다."
▲ 연안항을 연계해 중국 교역의 앵커로 역할하는 것은 식품산업과도 직접적인 관계가 있겠는데요.
"그렇죠. 식품클러스터산업을 전북지역 농작물만으로 할 수 있겠습니까. 유럽, 남아메리카 그 모든 곳에서 다 올 텐데, 그 배를 군산항으로 전부 데려올 겁니까. 인천이든 거제든 부산이든, 네트워크 체제를 생각해야 한다는 겁니다.
새만금이 국제무역도시 운운하는 일은 허황됩니다. 하물며 두바이 모델식의 금융중심, 첨단산업중심을 내세운 인천도 실패했는데.... 실패로 돌아간 두바이의 선례를 기억해야합니다. 인천이 국제무역지구라고 해서 아파트 지었지만, 실상은 거의 우리나라 사람들이 들어와 살고 있습니다. 그나마 인천은 '여기에 투자하면 나중에 오를 것'이라는 거품이라도 생산할 수 있는 곳이지만, 전북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새만금은 아주 내실있게, 실수요자 중심으로, 실제 비즈니스가 일어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상주인구보다 유동인구 늘리는 도시 만들어야 성공
▲ 새만금에 새로운 도시를 만드는 계획은 어떻게 보십니까. 쉽지 않겠다는 생각도 듭니다만.
"새만금 목표인구가 70만이라죠? 사실 불가능하죠. 이런 여건에서는 상주인구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유동인구를 주목해야 합니다. 파리를 보세요. 상주인구는 400만 밖에 안됩니다. 그러나 유동인구 1000만명이 매일매일 움직입니다. 두바이도 활발할 때에는 '뜨내기'가 많았죠. 상주인구는 30만명, 그러나 120만명이 움직였죠. 진짜 활발한 도시는 그런 도시입니다. 새만금이 목표로 삼아야 하는 도시도 그래야하지 않겠어요. 그런데도 마스터플랜을 짜는 사람들의 생각이 여전히 70, 80, 90년대를 못벗어나고 있어요."
▲ 새만금의 환경 문제도 빠뜨릴 수 없지요.
"물론입니다. 새만금은 수질 문제가 가장 중요하죠. 새만금은 무엇보다도 물과 환경에 대한 근본적인 치유법을 갖고 있어야 합니다. 지금까지의 개발계획을 보면 통상적으로 강에서 나오는 폐수의 오염원을 낮춰 바다로 내보낸다는 것, 이것밖에 없어요. 과거 우리 농촌을 보면 작은 규모였지만 생태 고리를 이용해 환경친화적으로 농사를 지었습니다. 요즘에는 바다의 온도차 (기껏 2∼3℃)를 활용해서도 전기를 만들어내는데. 물 흐름에 따라 더러운 물이 빠져나가도록 하는 방법도 있을 겁니다. 좀더 창의적으로 생각하고 적용해 봐야할 대목이지요. 솔직히 정부에서는 폐수처리장 정도 밖에 고민 못합니다. 환경 문제는 지역에서 관심을 가져야해요. 정부에 지원을 요청할 때도 이런 부분에 많은 요구를 해야합니다."
▲ 세계에서 가장 길다는 33.9㎞의 새만금방조제가 길을 열었습니다. 관광산업으로 연계시키는 방안이 필요합니다.
"새만금 국제공모에 참가한 코넬대학교 팀은 새만금의 랜드스케이프(landscape·조망)가 그리 아름답지 않다고 이야기하더군요. 실제로 남해나 동해는 아름다운 곳이 굉장히 많습니다. 그에 비해 이 쪽은 갯벌은 있지만, 전체적으로보면 지형 자체가 드라마틱하진 않습니다. 이런 환경을 잘 분석해 무엇을 만들어야 할 지 고민해야 겠지요. 외국을 보면 하나의 랜드스케이프가 전체를 지배합니다. 그러려면 규모를 상당히 크게 해야 하는데 우리나라는 작은 것들로 쪼개고 나누어 놓습니다. 그래서는 오히려 특색이 없어집니다. 관광지로 개발하기 위해 고군산에 대한 고민도 필요할 것 같습니다."
감동시켜야 지속가능한 관광을 얻는다
▲ 전라북도의 일반적 특성을 고려했을 때, 바람직한 관광개발 전략은 어떠해야 할까요.
"문화적 자원이 많다고 해서 그것이 바로 관광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개인적으로는 호남이 개발되지 않았을 때, 항상 푸근하고 자연의 모습이 남아있어 여전히 우리가 탐험할 수 있다는 게 기분이 좋았습니다. 그런데 요즘에는 구석구석 도로에, 구석구석 생태공원이 들어섰죠.
대박 상품인 '제주 올레'를 보세요. '올레'라는 말은 길에서부터 집까지 가는 작은 골목을 이르는 제주도 말입니다. 처음에 제가 그 이름을 제안했는데, 제주도에서는 올레라는 말이 너무 흔하다 보니 그걸로 되겠느냐는 반대의견이 있었답니다.
사실 '올레'는 이름 뿐만이 아니라 새로운 개념의 관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올레를 통해 '스테이(Stay) 관광'을 하며 관광객들이 물이나 밥을 사먹는 방식도 달라졌습니다. 예전에는 관광호텔로 들어가던 수입이 동네에 뿌려지게 된 거죠. 뭐든지 '스테이' 할 수 있도록 고민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제가 무주 구천동을 다른 곳보다 많이 가는 편인데, 순전히 연애시절에 찾았던 구천동 사연 때문입니다.(웃음) 관광은 '스토리'가 중요합니다. 지금은 너무 판에 박은 스토리들만 많다는 게 문제에요. 그런 것들은 너무 빨리 단물만 빼먹고 없어지죠. 지속가능하게 감동적인 스토리를 만들어야 합니다."
▲ 지나치게 '관광'이란 걸 먼저 생각하니까 그런 것 같습니다.
"그렇죠. 실적으로만 생각하면 호텔 짓고 카지노 만들면 최고겠죠. 그 것이 바로 지방자치의 그늘 중 하나입니다. 전북은 상대적으로 (자치단체장) 리더십이 안정적으로 갈 수 있는 곳이지 않습니까. 긴 호흡으로 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전북의 입장에서 지속가능한 방법을 진지하게 고민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 도시만들기는 지금 가지고 있는 것을 바탕으로 아름다운 도시, 살기좋은 도시를 만드는 것일텐데요. 지금 우리는 너무 개발에 의존하거나 재개발에 얽매여 있습니다. 바람직한 도시만들기는 어떤 것일까요.
"공공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우선은 시민들에게 개발될 수 있다는 '헛꿈'을 불어넣지 말아야 합니다. 살기 좋은 동네를 위해 도서관이나 커뮤니티센터와 같은 생활 서비스 공간을 마련하는 데 투자 해야 합니다. 오래된 도시에서는 구도심의 역할이 중요하죠. 예전에는 주민들이 아파트 짓기만을 기대했는데, 이제는 그럴 수도 없는 상황이지 않습니까. 주민들이 집을 짓거나 고치는데 자금을 저리로 빌려주는 식으로 도와줘야 합니다. 이렇게 사는 방식이 오히려 괜찮은 대안이 될 수 있다는 걸 주민들이 알 수 있도록 해주는 것도 좋은 정책입니다.
그는 "분수에 맞추고 분수를 키우자"는 말을 좋아한다고 했다. 분수를 맞춘다는 것은 쓸 데 없이 다른 도시를 쫓아갈 필요가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는 '분수를 키울 수 있는 방법을 다각도로 모색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창조라는 건 작은 단위에서, 자신만의 색깔로 시도할 때, 바로 거기에서부터 시작되는 겁니다. 창조는 생존을 위한 것입니다. 단순히 멋있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안됩니다. 창조는 '내가 갑자기 거기를 가겠다'가 아니라 '내가 지금 어떻게 살아남을 지 몸부림치며 진지하게 고민'할 때 나오는 겁니다."
인터뷰를 끝내며 그는 "지역에도 관심을 갖겠다"고 약속했다. 그리고 한마디 덧붙였다.
"우리에게 고도성장시대, 집약적 팽창시대는 지난 시대입니다. 이제 창조는 생존의 고민입니다."
◆ 김진애 의원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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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으로 보면 김진애 의원에 관한 자료 내용은 2004년을 기점으로 극명하게 나뉜다. 2004년 이전에는 도시건축가로서의 삶이었다면, 이후에는 정치가로서 치열하게 살고 있는 그를 만날 수 있다.
1953년 경기도 군포에서 태어난 그는 유신시절 서울공대 800명 학생 중 유일한 여학생이었다. 세계적인 수재들이 모인다는 미국 MIT에서 딸 하나는 '안고' 딸 하나는 '업고' 도시계획 박사학위를 받았다. 대한주택공사에서 일하며 우리 사회 현장을 배웠으며, 1991년부터 서울포럼 대표로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 대통령자문 21세기위원회, 세계화추진위원회, 제2건국범국민추진위원회, 국가이미지위위원회 등에서 활동했다. 산본 신도시와 인사동 길 등을 설계했으며, 미 「타임」지 선정 '차세대 세계리더 100인'에 선정되기도 했다.
2004년 현실 정치에 입문했으며, 이후 광복60주년기념사업추진위원회 미래와세계 분과위원장, 행정중심복합도시추진위원회 위원, 대통령자문 건설기술·건축문화 선진화위원회 위원장 등을 지냈다. 이화여대 건축학과 초빙교수, 카이스트 미래도시연구소 겸직교수 등도 역임했다. 최근에는 정부의 4대강 사업에 반발, 저지 투쟁을 적극적으로 펼치고 있다.
그동안 '사람' '사회' '건축' '도시' 등을 주제로 「이 집은 누구인가」 「우리도시예찬」 「김진애의 공간정치 읽기」 「도시 읽는 CEO」 등 20여권의 책을 발표했다.
파워블로거이자 블로거 정치인으로 '사람, 공간 그리고 정치(www.jkspace.net)'를 운영하고 있다.
대담=김은정 편집국장








